사회문화

연좌제의 슬픈 추억 - 역사 교과서 쯤이야 딱지 뒤집기 보다 쉽지...

노롱뇽 2015. 10. 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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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민국 헌법 제 13조 3항은 아래와 같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불이익한 처우를 흔히 '연좌제'라고 부른다. '실미도'라는 영화를 보셨으면 충분히 짐작이 될 만한 부분으로, 한국사나, 세계사나 연좌제의 피해자는 상당히 다양하고 많다. 그 범위를 좁혀 현 생활에 맞춰 생각해 보자. 중학교때, 불우이웃을 돕는다며 쌀을 라면 한 봉지 만큼씩 내는 행사가 있었다. 남학교 였고, 중학생이었다. 장난기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나이, 한 녀석이 등교길에 음료수를 사다가 빨대를 한 봉지를 들고와버렸고, 어느 덧 이 빨대는 '쌀총'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총알 넉넉하겠다. 빨대 하나씩들 다 돌렸겠다. 신나게 빨대를 입에 물고, 불어대기 시작했다.


교실 바닥이 하얗게 변하는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쌀총 싸움에 전부가 참여하지는 않았었다. 대부분은 한 두번 불어보고는 흥을 돋우는 구경꾼으로, 다른 놈은 단순 방관, 다른 놈은 여전히 잠에 덜깨에 자는 놈도 있었다.


나는 열심히 웃으며 지켜보는 놈


결국 주모자(빨대 가져와 아디어 제공한 놈), 주동자(빨대를 손수 나눠주며 쌀총의 위력 홍보 및 쌀총 싸움을 독려한 녀석), 참여자(10여명)들로 인해 엄청난 고통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쌀총 싸움은 참여하는 것이나, 구경하는 것이나 너무 재미있어 아무도 멈추지 못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으나, 모두들 그냥 그림자로 생각하고 열심히 놀았다. 잊었던 것도 잠시, 


영어 시간이었다...


중학생 허벅지보다 더 두꺼운 팔뚝 - 당시 YMCA에서 몸만들기(Body Building) 트레이너를 하고 계셨다 - 으로 갸냘픈 중학생들 패던 그 무시무시한 ㅂ중학교 ㅅ선생님의 목소리와 표정, 그 괴력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선생님 시간이었다. 

유독 길게 느껴지던 쉬는 시간 10분이 지나고, 이제야 아이들이 정신줄을 잡았다. 


'아차, 영어 시간이다.'


이제야 시멘트 바닥에 수북이 쌓인 쌀이 눈에 들어온다. 


'뒤졌다...' 


모두들 눈을 마주보며, 측은한 듯 서로를 위로한다.


'잘가...'


그날 나는 이 쌀총싸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강조), - 물론 반 전체가 다 기합을 받고 다 맞았지만 나만 특별히 망치 손잡이로, 발바닥을 20대 이상 맞고, 친구에게 업혀서 집에 갔다...

 그냥 선생님과 친하다는 대단한 잘못으로(당시 우리 학교는 친하다고 때리고, 안 친하다고 때리고, 공부 잘한다고 때리고, 공부 못한다고 때리고, 대답 잘한다고 때리고, 대답 못 한다고 때리고, 표정이 밝다고 때리고, 표정이 어둡다고 때리고, 키크다고 때리고, 키작다고 때리고, 뭘해도 다 때렸다)


웃으며 내 발바닥을 때리시던 선생님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집에선 말도 못하고,

당시엔 학교에서 맞았다고 하면, 뭘 잘못했냐고 집에서 또 맞았기에...


억울? 이 당시엔 이런게 연좌제인줄도, 부당하다는 것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학교가면 맞는 것이고, 한대도 안 맞고 하교하는 날은 길에서 차라도 덮칠까 무서워서 벽에 붙어서 걸을 정도였다. 6교시 동안 단체 기합이 없는 시간이 없을 정도 였으니...


한국 근대사에서는 연좌제 금지가 1980년 8차 개정헌법에서 이루어 졌지만, 사회적 인식 속에는 아직도 연좌제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 


연좌제로 인한 사형 집행


연좌제로 인한 사형집행


그 한국사에 길이 남을, 연좌제를 가장 잘 쓰셨던 분이 있다. 

그분의 따님이 이 연좌제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고, 그 연좌제를 벗어나고자 


본격 현실부정, 연좌제 회피 목적, 부친 미화 프로젝트를 거국적으로 진행하려한다.


대한민국은 근대라는 짧은 기간동안 일제 강점기와 6.25라는 엄청난 일을 겪으며 살았다. 이 험란한 세파를 통과해 나온 사람이라면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닐까 싶다.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있나, 가족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나? 아직도 북한이나 독제 국가에서 고문할때 이용해 먹는 가족 고문 앞에 자신의 소신도 날려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가족을 목숨을 담보로 강요하는 이들 앞에서 '배신'을 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대상이 일본이냐, 공산주의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배신을 정당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힘든 역사 속의 피해자라면 서로에대해 측은함을 느끼며, 동병상련의 마음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 쪽은 쪽바리라고 손가락질, 한 쪽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하는데, 참,


서로 기를 쓰고, 나는 아니고, 내 아버지도 아니라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이 모습이 스스로 자신들의 조상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더 드러내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늘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로 시작하는데, 노무현 이야기 할꺼다...

이 사람 장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했던 행동이 참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다들 경험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한다. 거짓말(혹은 드러내지 않았더 사실)이 들통났을때, 바로 인정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그리고, 다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사람은 바뀔수 있다고 하는 주장또한 근거도 있고, 힘이 있는 말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제 아버님이 친일 했습니다. 친북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서 나라와 민족 앞에 사죄 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 - 어려울 것같긴하다. 이해는 된다만 이대로 진행한다면 용서는 안될 것 같다.


노무현이 멋있다는 이유가 저것이다. 쿨하게 인정한다. 장인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대통령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친일 친북은 스스로 한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연좌제에 묶여 이화여대도 뒷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한 국가 대장님의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집권당과 국가 원수가 손을 잡으면 교과서 하나 뒤집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아직도 연좌제의 추억 속에 매몰되어 사시는 이분들에게...

1) 헌법 13조 3항을 읽고, 당신들은 조상의 허물과 법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법적 연좌제 탈출 방법)

2) 이 허물이 마음 속에 깊이 아로 새겨져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면, 당신들께서 이 허물이 다 잊혀질 정도로 열심히 남은 기간 국가를 통합하고 재건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길 감히 조언해 본다. (심리적 연좌제 탈출 방법)


국가 수반이 자신의 통치기간, 적대국가 (북한 등)도 아닌 자신의 통치 영역(영토)에 속한 학교(이화 여대)를 방문하는 일에도 사복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거부 받는 슬픈 나라가 바로 내가 살고,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우리나라라는게 참 속상하다.


마지막으로 역사 교과서를 향한 나의 생각을 담은 


2015/10/11 - [교육생각] -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넘어서 - 우민화 탈피


이 글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잘 읽으시고, 여론에 밀린 단순 반대가 아닌, 제대로된 반대를 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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