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수정일 ; 2017.7.25
자신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는 사회나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학습 현장에서도 학생들의 의사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꽉 막힌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의사를 표명할 수 없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지 못하고, 생각을 제한당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흥미, 재미를 잃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즐거움 보다는 의무감이 얼굴에 가득하다
이런 현상은 암기 위주의 일방적 교육에서 흔하게 발견됩니다.
아쉽게도 암기 위주의 일방적인 교육은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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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질문은 기껏해야 교사가 정해준 범주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그 범주 안에서도 교사의 심기를 불편케 하면 혼나기가 일수 입니다. 조금이라도 고민한 끝에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한 민국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비슷합니다.
"쓸데없는 것 묻지말고, 그냥 외워!"
고민과 고심의 결과물은 '쓸데 없는 것'이 되버리기 쉽기 때문에 아이들은 '쓸데 없는' 고민과 고심은 점차 그만두게 됩니다. 학습의 재미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생님들 부모님들이 시키니 따라갈수 밖에요.
생각이 죽어가는 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요?
자신의 의사가 조금도 반영되지 않는 교육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얻고 있을까요?
이즈음에서 학교의 기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초의 학교는 산업화에 따른 대량 공장 노동자의 배출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양 면에서는 똑똑한 사람들 보다는 바보 같아도 말 잘듣고, 시키는대로 잘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려 했고, 지식 면에서는 공장 주인의 지시를 알아들을 정도의 지식, 한 번도 다뤄보지 못한 기계를 무리 없이 가동시킬 지식을 가진 사람들, 딱 거기 까지 도달 할 수 있는 인재(?)들을 만들어내는 데 그 교육목표가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생각많고, 똑똑한 노조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고용주는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고 싶은데 생각 많고 똑똑한 노조가 같이 잘 살자고, 너만 배불리지 말고, 함께 행복하자고 하니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빼앗기는 것같아 노동자들의 의견이 싫을 수 밖에요.
초기 공장의 주인들, 즉 당시 고용주들도 생각 없고, 힘 없는 바보들을 피고용자로 선호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어려우니 농장의 자녀들을 돈을 벌게 해준다며 꼬셔다가 학교에 집어 넣어 '저임금 고노동' 노동자로 변신시켰습니다. 이전에는 어느 정도 부의 분배가 이루어졌고, (어느정도는)노력한 만큼 잘 살수 있는 분위기 였으나, 산업화를 맞으며 부는 점차 특정한 곳에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사악한 시스템이 지금도 살아남아서 여전히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일본이 그들의 지배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근대학교 시스템을 '식민지 바보 교육' 시스템으로 만들었고, 미국이 미군정 실시할 때, 경제적, 시간적 여건이 여의치 않자 이런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시키게 됩니다. -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태
반대로 인터넷시대가 열리면서 정보의 집중현상은 사라지고, 정보 공유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한 회사의 부속품 내지 한 사회의 부속품으로 밖에 살아갈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들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속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학교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들 깨닫고 있습니다.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 그 첫 번째는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하품 날 정도의 쉬운 목표(말 잘듣는 공장 노동자)로 공부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 이유는 엄청난 가능성과 개성, 타고난 특성이 있음에도, 그저 부속품으로 밖에 살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 개성을 무시하고 부속으로 길러내는가는 기성세대가 더 절감할 것입니다. 개인의 특성상 아이들은 한 두가지 과목에 흥미와 적성을 보이게 되는데, 그런 아이 개개인의 특징은 입시와 맞물리면서 틀에 찍어낸 듯, 모든 과목을 고르게 잘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마주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조금 비꼬아 말해 공산품입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것이 우리의 교육입니다.
짧으니 당겨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관심 보다는 남(사회 기득권)이 정해놓은 상자 안에 자신을 구겨 넣어 공산품화 되는 것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 그런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습니까?
더 안타까운 것은 16년 동안(초중고대) 그렇게 눌렸던 인생은 - 대학에서 조차도 생각 보다는 암기가 우선되는 교육분위기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비로서 자신의 생각을 꺼내라 강요 받으며 또다른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물론 직장에서도 상사들에게 생각을 재단당하기는 매 한가지이긴 합니다만...
'파스칼'의 의도와 맞는지는 모르겟으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한 그의 말에 저는 공감합니다.
사람은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없다면 그는 동물과 같다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동물과 구별되는 유일한 특징이 바로 '생각'이라는 것을요. 본능에만 충실한 모습 그 모습을 우리 대한 민국의 교육에서는 길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배고프면 소리지르고, 급하면 부모에게 까지 칼을 들이대는 현실은 충분히 한국교육에서 '동물화'교육을 시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육에서 빠진 그 무엇 - 생각 - 을 찾아내어 그것을 교육 현장에 적용한다면 아이들은 '동물'수준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사람이고, 가르친 대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대한 민국 교육 일기가 맑음이 되길 간절이 바라면서 마칩니다.
이글은
2015/08/20 - [교육생각] - 교육 일기 예보 - 인간판 동물의 왕국을 보며...
에서 이어진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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