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생각

리슨! 소통의 힘, 경청과 수용의 마력이 필요한 가정교육

노롱뇽 2015. 11. 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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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청과 수용은 필수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가정이다. 그러나 가정마저 수직적 문화로 팽배했던 90년대 초반까지는 경청과 수용을 가르치기 어렵거나 시기상조 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경청과 수용이 가르쳐져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1. 민중 총궐기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 되는 것 같아서 참 아쉬움이 많지만, 설명을 위해 불가피하게 정부측과 민중으로 분리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가장 큰 아쉬움은 이 두집단이 절대로 기득권은 포기할 생각(다른 말로 수용)은 없는 채로 대치했다는 점이다.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집단의 만남은 줄다리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집회가 끝나고도 마치 부부싸움을 한 후 냉전시기를 겪는 부부와 같이 서로에 대한 잘잘못만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없는 정당방위라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민중 총궐기의 문제는 경청과 소통, 수용이 전혀 없었던 불통의 대축제였다는 것이다.


2. 수직적 가정의 비애

 불통의 대축제를 보며 한탄하며, 도대체 대한 민국의 경청과 수용은 어디갔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도대체 이것을 어디서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결론은 오직 하나, 경청과 수용은 가정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절대 무리이고, 아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익힌 것은 숨기고, 선생님들의 요구에 경청과 수용을 하는 흉내만 낼 확률이 높다.


아이들의 경청과 수용은 반드시 부모의 경청과 수용에서 배우게 되어 있다. 나도 어린 시절 수직적 가정 문화에서 자랐다. 절대로 아버지께는 말대꾸할 수 없었고,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그치만' 이란 말까지만 할 수 있었고, 의견 피력은 '절대불가'였다. 만약 말로든 행동으로든 내 의견이 표현되면 '싸가지'로 시작되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초기(5세무렵?)엔 아이들에게 버릇 없는 아이가 되면 안 된다는 나만의 신조로 아이들에게 내 아버지(아이들에겐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대응하곤 했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자기들끼리 잘 놀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뭐가 잘 못된 것 없나 살피는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부모자식 관계에서 눈치를 본다는 것은 분명 중2병으로 이어지는 것이 명약관화이다.


2015/10/13 - [교육생각] - 중2병(사춘기)를 피하는 방법 - 좋은 여행 가이드가 되길!


그래서 내가 먼저 나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아가들이 날 멀리하는 것에 서운함 + 아이들과 가까와 지고 싶은 열망에...


3. '경청 후 구나'화법의 마력

대부분의 부모는 직장에서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고 돌아와 가정에선 쉬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린 자녀들은 아직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지친 부모에게 달려들어 놀아달라고 아우성일때가 많다. 그럼 놀아줘야 하는데, 지친 몸과 맘으로는 아이들에게

'하지마!'가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만 그런게 아니라 아내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점차 아이들끼리의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불통이 점차 시작되는 것이었다. 


지친 나머지, 울면 '울지마!'

짜증내면, '짜증내지 말랬지!'

너무 신나하는 아이들을 향해, '좀, 가만히 있으면 안돼?!', '아, 이제 그만...!'

...

...

...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우는데, 안아주면서, '왜 울어?" 라고 물었다.

처음엔 말을 안하던 녀석이, '많이 속상했구나?' - 구나 화법

했더니, 속에 있는 것을 술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다시 소통이 어렵사리 시작되었다.


4. 수직적 문화의 폐해

직장에서도 내 의견 발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다. 잘 안되는 것에 대해 내 의견을 제시하면 '안티 성향'을 버리라는 핀잔이 돌아오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일제시대(완전 수직구조), 군부 독재(더 심하면 심했지 만만하지 않았던 수직구조)를 통과하며, 사회 전반이 수직구조에 적응된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는 이 불통의 수직구조는 사라져야 대한민국의 재 도약이 가능하다 믿는 나 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불통의 정부나 국회의원들이나, 성난 민중이나 둘다 수직구조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둘다 피해자요, 둘다 불쌍한 입장에 처할수 밖에 없다. 토론이 안되는 문화, 회의 장에서 격론은 오갈수 있으나, 아얘들을 생각이 없이 내 이익만 위해 소리가 더 크면 이긴다는 식의 '갑'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미친 경쟁이 오늘의 대한 민국을 만들어 낸것이다. 


이번 민중 총궐기에서도, 정부와 민중은 서로 '갑'이 되기위해 서로 죽자고 달려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둘다에게 필요한 것은 '귀'였다. 경찰이라는 장벽을 중심으로 높으신 분들은 건너와서 들을 생각이 없고, 민중들은 한사코 넘어가서 이야기 해보겠다고 들을 생각이 없었다. - 뭐 그동안 너무 많이 속았던 심정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대로는 절대로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5. 대한민국의 소통을 위해

위에서도 언급한 어두운 역사들로 인해 한국민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 밟고 올라 서야 행복하다는, 수직구조에서 상위에 올라서야 편하고 좋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살아왔다. -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사실로 인정된다.

그러나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려고 이 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전 세계에 갈등과 편가르기가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동단결'이 잘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대한민국보다는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소통회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당장의 투쟁이나 시위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글의 주제인 '가정교육'으로 돌아간다면 가정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구조'속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구나 화법'으로 동감을 표현해주고, 아이와 공감해줄때, 발생할 때, 진정한 경청, 소통, 수용의 문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6. 다시 민중 총궐기로

현재 민중 총궐기는 서로에 대한 잘못 가리기로 2차전을 치르는 듯 하다. 역시 서로는 서로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전혀 없다. 정부측의 의견이 아무리 옳다해도, 상대가 상처입고, 힘들어 한다면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이고, 민중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의견이 아무리 옳아도, 정부의 입장을 고민해보고 움직일 수있는 둘다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어쨌든 내 결론은 '가정교육'이지만, 대한 민국이라는 정부와 민중에게도 가정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주먹다짐을하고, 선생님 앞에서 끝까지 난 잘못이 없고, 저아이가 잘못했다라고 아귀다툼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7. 결론

오늘부터 '구나 화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멋진 부모의 모습으로 자녀들의 행복한 인생 여행 가이드가 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잘 들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더라구요. 


대한 민국의 경청, 소통, 수용의 문화가 가득하여 '대동단결'하는 힘있는 나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봅니다.


한 쪽 편에 치우쳐 비판글을 다셔도 좋으나 비판 글과 함께 제 의견이 어떤지도 반드시 함께 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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